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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수, “오이디푸스는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연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비운의 남자로 돌아오다
 
송현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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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연출 서재형)'에 출연하는 박해수 배우를 LG아트센터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 윤경민 기자
 
(뉴스컬처=송현지 기자)
'퉁퉁 부은 발'의 비운의 남자가 돌아왔다. 수천 년 전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를 아내로 취한 남자. 저주받은 운명을 두 눈 뜨고도 보지 못한 남자, 오이디푸스. 감당하기 어려운 운명의 무게를 어깨에 얹고 비극을 향해 달려가던 오이디푸스 역의 박해수 배우가 기꺼이 다시 그의 짐을 지겠다고 나섰다. 2년 전 입소문만으로 전석매진을 기록했던 LG아트센터 화제작 연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2013년 10월 9일~20일/ LG아트센터)를 통해서다.
 
단언컨대 오이디푸스는 박해수 배우의 운명이다. 초연 당시 코러스로 합류했다가 쟁쟁한 배우들과의 내부 오디션을 통해 오이디푸스로 최종 낙점됐다. 박해수 배우는 지금은 절대로 이 역할을 양보할 수 없다며 큰 애정을 보이고 있지만, 오이디푸스와 처음 만났을 때는 중압감에 눌렸다고 고백했다.
 
“연출님께서 말씀하시길 오이디푸스를 맡은 배우들은 항상 오이디푸스한테 눌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의 운명의 무게에도 눌리지만, 수천 년 전 작품이니까 그간 쌓아온 시간의 무게에 눌리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그 무게를 떨쳐내기보다는 온전히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어요. 악몽도 많이 꾸고 고통스러운 시기였죠.”
 
그는 연습 과정을 회상하면서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자주 반복했다. 어려운 원작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 감정적으로 단순화시키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그는 오이디푸스 역으로 제4회 대한민국연극대상 남자신인연기상(2011)과 제28회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2012)을 수상하면서 노력의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았다. 이번에 다시 오이디푸스 역을 받아들인 이유는 외적인 보상에 의해서라기보단 오히려 내적인 동기가 더 크게 작용했다.
 
“배우로서 기본기를 다시 탄탄히 다질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다시 인큐베이팅하는 시간이죠. 이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깨졌고 넘어졌고 배웠어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못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니 감사한 마음으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직 담금질을 당해야 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의 연기를 한 번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이미 담금질을 당할 대로 당한 강하고 단단한 인상의 박해수 배우를 떠올리겠지만, 그는 아직 더 깨지고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는 연해지더라도 지금은 더 강해지고 싶어요. 다행히도 저를 담금질해주는 좋은 배우들과 연출님들을 만나고 있어요.”
 
▲ 연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2011년 공연 장면.     © 사진=LG아트센터
 
훈련 강도가 높기로 소문난 서재형 연출에게 박해수는 주로 어떤 담금질을 당하는 걸까? 그는 ‘밀도’라고 답했다. “100명이 가진 에너지보다 1명이 가진 에너지가 더 세야 한다는 거죠. 배역에 온전히 빠져있는 배우들을 보면 혼자서 무대를 꽉 채우고 있는 느낌을 주는데, 아직은 저에게 부족한 부분이에요. 작품이 워낙 세고,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들이라 그런가 봐요. 오이디푸스 같은 사람이 지금 여기 걸어오면 분위기 참 애매해질걸요?(웃음) 그게 바로 밀도인 거죠.”
 
그는 부족하다고 말은 했지만, 오이디푸스를 설명하는 그에게서 ‘밀도’가 훅 밀려오는 걸 무의식중에 느꼈다. “배역을 이해하기 참 어려웠어요. 그러나 이해해야만 했죠. 오이디푸스에겐 의지가 없었던 거 같아요. 백성을 구하고 가난한 나라를 위해서 움직였을 뿐인데 상황들이 그도 모르게 비극으로 치달아요. 그를 그저 이해하기에는 너무 불쌍해서 연민이 앞서라고요.”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부정하지만 결국 신탁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지막에 신과 대화하면서 회개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내려놓아요. 앞세대의 누군가가 잘못을 했고 그 죄가 나에게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죠. ‘나는 악인이요, 악하게 태어났음을 알겠다’는 대사는 오이디푸스가 진정한 인간으로 접어드는 시점이자, 1%의 의지가 생기는 시점입니다.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됐으니 이제는 내 발로 가겠다는 의지 말입니다. 1%의 의지를 가지고 성 밖으로 나가는 오이디푸스는 이후에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되어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초연 때 이 작품이 화제가 된 이유 중 하나는 무대 위 객석 때문이었다. 두 눈을 뽑아내고 방랑의 길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오이디푸스는 무대 위에서 내려와 텅 빈 객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굳게 닫혀 있던 성문 같은 막이 스르르 올라간다. 무대 위에 앉은 관객은 쓸쓸한 황야를 닮은 객석을 홀로 걷는 오이디푸스의 뒷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등등. 진짜 오이디푸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연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장면 중 객석으로 퇴장하는 오이디푸스의 모습.     © 사진=LG아트센터
  
“사실 저도 놀랐어요. 공연 직전까지 연출님께서 그 반전을 보여주지 않았거든요. 리허설 때 마지막 신을 연습하는데 어느 순간 성문이 열리더라고요. 저희 모두 깜짝 놀라서 울었어요. 객석에 시민을 상징하는 조명들이 군데군데 들어와 있는데 찡하더라고요. 걸어나갈 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전 기도를 해요. 이제 나 오이디푸스가 갈 테니 테베에 비를 내려달라, 테베를 구원해달라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오이디푸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박해수 배우는 "연민으로 봐달라"며 조금 걱정 어린 눈빛을 띠었다. “오이디푸스가 너무 아픈 역할이라 관객들에게 치유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해요. 너무 고통스러운 일을 겪는 사람이 보면 안정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행복한 사람이 보면 우울해질 수도 있겠죠. 음… 커튼콜에서 부르는 노래가 ‘당신도 만나게 되리 그 삼거리에’인데요, 오이디푸스가 정말 작은 선택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을 마주하게 되잖아요. 오이디푸스처럼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고, 더 나아가 위로를 주는 작품이라 생각해요.”
 
초연과 비교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새로운 배우들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서재형 연출이 지난 관객과의 대화에서 “배우들이 달라졌다는 것은 모든 게 달라졌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로운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앙상블이 이번 공연의 관극 포인트다.
 
“초연 때보다 신장은 작아졌지만, 연습의 집중도는 더 좋아졌어요.(웃음) 그때는 조립할 게 많았다면 지금은 이미 조립된 상태에서 안으로 많이 파고드는 중이거든요. 특히 코러스와 저와의 연관성도 강해지고 있어요. 제가 코러스를 볼 여유가 생기면서 밀도가 강해진 느낌입니다. 또한, 크레온 역의 이갑선 배우는 맏형으로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임강희 배우는 제가 원래부터 좋아하는 배우라 작품은 힘들겠지만 누나(임강희)가 하니까 나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나는) 착하고 인간적이고 집중력이 좋아 이오카스테랑 잘 맞는 듯해요.”
 
서재형 연출은 배우들이 항상 100%의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해수 배우도 그 사명감에서 벗어날 순 없을 법. 그러나 그는 “100%가 항상 나올 순 없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더 멋진 각오를 세웠다. “이번의 목적은 충분한 연습을 통해 완벽히 이해한 상태에서 무대에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달인이 되고 싶습니다. 구두닦이가 고통스러운 일을 수십 년 해서 달인이 된 것처럼, 저도 100%의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 어렵겠지만 한 번 도전해보려 합니다. 충분히 고통스러워하고 충분히 연습하면 달인의 경지에 오를 거로 생각합니다.”
 
▲ 연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연출 서재형)'에 출연하는 박해수 배루를 LG아트센터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 윤경민 기자
 
2011년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공연 이후 그는 연극 ‘됴화만발’의 조광화, 연극 ‘갈매기’의 오경택 등 좋은 연출가와 함께 작업하면서 자괴감과 함께 자신감을 얻게 됐다. 그리고 최근에 했던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를 통해서는 관객의 고마움을 깨달았다. 지난 2년의 경험을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잠시 책임감을 덜어놓고 좋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그에게 조금 색다른 행보였다. 매번 고독하고, 싸우고, 화내고, 슬퍼하는 이전의 진지한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관객과 가까이 웃으면서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북한 사투리를 배워보자는 개인적인 의도로 하게 된 것도 있지만 (웃음) 작곡가와 인연도 있고 또 무엇보다 내용이 재밌어서 출연하게 됐어요. 많이 보러 와준 관객들 덕분에 ‘인기’라는 걸 느끼게 돼 굉장히 감사했어요. 배우들끼리 팬클럽이 생겼네 안 생겼네 하면서 농담하기도 했다니까요?(웃음)”
 
박해수 배우가 맡았던 이창섭 역은 겉으론 무뚝뚝하고 무자비한 인민군 대장이지만, 속으론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심성을 가지고 있어 점차 적들에게 마음을 열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율동도 서슴지 않는 귀여운(?) 캐릭터이다. 그런 그를 기억하는 관객들이 ‘오이디푸스’를 본다면 많이 놀랄 수도 있을 거라 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신나게 즐기면서 봤다면, ‘오이디푸스’는 저와 함께 무거운 극 안으로 들어가서 봐야 할 겁니다. 힘들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이런 작품도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저의 다른 면모도 보시게 될 겁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신인상’을 받았던 그에게 이젠 믿고 보는 관객까지 생겼다. 실력과 인기를 겸비하면서 꾸준히 비상하고 있는 그가 초심을 다잡았다. “저를 믿고 본다는 건 제 선택을 믿는다는 거고, 또 제가 열심히 할 것임을 믿는 거니까, 제가 할 일은 딱 두 가지입니다. 좋은 작품을 잘 선택하고, 그 작품 안에서 열심히 하는 거죠. 좋은 작품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연이라면 장르 상관하지 않고 도전하겠습니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무사, 장군, 왕과 같은 기존의 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조금은 편안한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달달한 로맨스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사춘기 소년처럼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맨스 하고 싶은데 잘 못해요. 제가 실제 성향은 굉장한 로맨티스트인데 무대에선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해보긴 해야겠죠?”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듯하다. 오이디푸스에서 자신의 아내(라 생각하는) 이오카스테를 바라보는 그 자상하고 따뜻한 눈빛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작품 자랑을 잊지 않았다. “근래에 보기 힘든 청년들이 열심히 뛰고 있어요.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땀방울을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날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대 위 무대에서 관객들은 시민으로서 존재하고, 또 배우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게 될 것입니다. 배우와 함께 무대에 있는 매력적인 순간이지요. 저도 느껴보고 싶긴 한데… 이 역할만큼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요. 전 평생 오이디푸스의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프로필]
이름: 박해수
생년월일: 1981년 11월 21일
학력: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수상: 제4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신인연기상(2011), 제48회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2012)
출연작: 공연- 안나푸르나, 미스터 로비, 사춘기, 영웅, 29계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폴포러브, 갈매기, 됴화만발,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삼천, 여신님이 보고계셔/드라마- 무신/ 영화-소수의견 外

(감성을전하는문화신문=뉴스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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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지 기자
뉴스컬처/뉴스제작본부
song@newsculture.tv
 
2013/10/04 [11:14] ⓒ 뉴스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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