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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장수는 역사를 이고 [다윈의 거북이]
내 기억은 딱딱해. 무거워. 그 무게가 날 짓눌러
 
장소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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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다윈의 거북이](연출 김동현)의 한 장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2시간 남짓한 연극에서 다룰 수 있는 역사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긴 시간을 두루 다룬다면 그 시선의 깊이는 얼마큼 내려갈 수 있을까. 너비와 폭 모두 가져간다면 관객들과의 소통은 어느 정도나 가능할까. 후안 마요르가가 쓴 [다윈의 거북이](연출 김동현)은 이 모든 염려와 궁금증을 속 시원히 날려버린다. 해리엇의 이 한 마디와 함께. "봤어요, 거기 있었죠."
 
학회다, 출판이다, 역사에 파묻혀 사느라 제대로 식사할 겨를 없이 바쁜 교수 앞에 웬 곱사등이 노파가 나타난다. 자신을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다윈의 거북이, 해리엇이라 주장하는 그녀. 지나는 광인인가 싶더니, 알면 알수록 진짜 거북이다. 걸음은 1시간에 2m요, 굽은 등에 붙은 건 딱딱한 갑골인데다 날아가는 파리까지 간식으로 날름. 하지만 그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져오는 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증언들이다.
 
내 기억이 보물
 
“근데요, 근대(모던)가…" 불쑥 나타나 불쑥 던지는 이 한마디에 교수와 해리엇의 아라비안나이트, 아니 ‘유로피안(European)나이트’는 펼쳐진다. 독일 대 프랑스의 간첩전, 유대주의, 드레피스사건, 달리의 전위예술, 공산주의 대두와 돈키호테·공산당선언·종의기원 등의 금서처분, 히틀러, 베를린올림픽의 손기정, 베르니카와 아우슈비츠 학살, 공산당혁명과 소련붕괴, 그리고 베를린장벽까지. 긴 역사를 상징하듯 각종 액자와 시계 등 소품이 천장에서 내려오자 200년의 유럽사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책이나 신문의 글자들로 가득한 무대 뒤편 스크린은 가운데가 거북이 등껍질 모양으로 뻥 뚫렸다. 거기에 해리엇이 쏟아내는 진짜 역사가 쓰인다. 흥미로운 건 이 ‘구술사’의시점이다. 민중 틈을 기어 다닌 거북이의 입에서 나오는 역사는 그 어느 것보다도 아래로부터의 관점이다. 게다가 문학과 역사를 비교하며 ‘직접 본 것만’, ‘허풍 없이’라는 교수의 주문이 계속 들어오는 등 역사학에서의 단골 소재들도 부담스럽지 않게 등장한다.
 
해리엇이 겪어온 역사는 기쁨과 환희의 순간보다 공포와 두려움, 실망이 더 크다. 특히 ‘유대인이 거북이 삶보다 위험하다’나, 히로시마폭격 앞에서 배웠다는 수동태에서 ‘행위자들은 항상 뒤로 슬쩍 숨는다’는 것을 배웠다든지, 숙청을 자행하고 곧 자멸한 공산주의를 두고 ’결국 혼자 남았어’라고 촌평하는 대목들은 놀라울 만큼 예리하다. 웬만한 인간 이상의 역사인식이다.
 
내 기억은 짐
 
남겨진 이들의 아픔과 부채의식도 역사의 한 요소다. 끔찍했던 기억들을 회상하는 것조차 그에겐 힘들다. "내 기억은 내 등껍질처럼 너무 딱딱해. 무거워. 그 무게가 내 등을 짓눌러." 잊는다는 것은 그들을 한 번 더 죽이는 것, 많이 아픈 만큼 그들을 기억하라는 해리엇의 대사는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에 대한 역사가 계속 되어야 함을 나지막히 일러준다.
 
그리곤 곧 입을 닫는다. 인간의 역사는 나아가지 못하고 반복해왔고 그래서 더 이상 새로운 게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다소 의아하다. 출입을 막는데도 교수 집에 쳐들어와선 말할 게 있다고 큰소리치더니, 뒤로 갈수록 자기감정에 취해 시들해지는 모습은 해리엇답지 않다. 하지만 그 폭력성과 잔인함에 인간진화의 현단계를 ‘괴물’이라 지칭한 그의 심정은 십분 이해간다. 괴물들에게서 벗어나 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해리엇을 두고 ‘우리집에 괴물이 있다고 수근거려요’라던 교수 아내의 투덜거림이 무색해 지는 장면이다.
 
해리엇이 말을 하게 되고 두발로 서 걷게 한 특별한 진화는 모두 인류의 잔학함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데도 그 말을 듣는 인간은 정신을 못 차린다. 돈과 명예, 업적을 위해 진심을 숨기고 마음에 없는 말들을 하며 서로 이간질에 남 탓하기에 바쁘다. 실제 인간 세상에서 흔히 보는 모습들이다.
 
▲ 연극 [다윈의 거북이](연출 김동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여러모로 가치 있는 보물이라면서, 그 소중한 것을 지켜내지 못한다. 그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인류의 한 모습인 걸까. 부끄러운 우리 모습을 희롱하며 마지막에 웃는 승자는 해리엇이다. 하지만 그가 갈라파고스 섬으로의 돌아갈 날은 아직도 멀었다. 애초에 그를 데리고 나온 인간, 찰스 다윈을 탓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욕보셨어요, 해리엇
 
[다윈의 거북이]는 분명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는데도 유쾌하다. 공연 소개에 붙은 수식어 ‘블랙코미디’가 딱이다. 시니컬한 조소일수도 있겠지만, 인류가 지나왔고 또 이어가고 있는 끔찍한 현실에도 좌절하지 말라는 격려 같기도 하다. 다 보고서 무력해지지만은 않는 이유다.
 
실제로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데리고 온 거북이 해리엇은 지난 2006년, 호주의 한 동물원에서 175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도 그 사실에서 착안해 쓰인 것이라고. 오래 살아서 더 욕된 꼴을 당하고, 험한 모습을 많이 본 장수거북이 해리엇. 늦었지만 인사는 해야겠다.
욕보셨어요. 미안해요. 고맙습니다.
 
 
[공연정보]
공연명: 연극 [다윈의 거북이(La Tortuga de Darwin)]
극작: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
연출: 김동현(Kim Dong Hyun)
출연: 서울시극단(Seoul Metropolitan Theatre)
공연기간: 10월 9일(금) ~ 11월 1일(일)
공연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소요시간: 120분
티켓가격: R석 35,000원, S석 25,000원

(문화전문 신문방송 뉴스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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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8 [22:58] ⓒ 뉴스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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